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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다락방

실내악의 다양한 악기 편성

by ▤♪▧♬▥ 2020. 5. 29.

 

다양한 악기들이 편성된 작품들의 매력

흔히 '실내악'이라고 하면 피아노3중주나 현악4중주를 떠올리게 된다. 아마도 실내악 문헌 중에서 피아노3중주와 현악4중주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실내악 명곡 중에는 피아노3중주와 현악4중주 외에도 다양한 악기들이 편성된 작품이 많기에 실내악 감상을 단지 피아노3중주와 현악4중주에 국한시킨다면 실내악의 진정한 매력을 상당 부분 놓치는 셈이다.

 

현악4중주에 악기 한두 대를 더 추가한 5중주나 6중주만 보아도 그렇다. 피아노 한 대를 추가한 슈만 피아노5중주가 뿜어내는 관현악적 웅장함과 클라리넷을 추가한 모차르트 클라리넷5중주의 고전적 아름다움, 그리고 비올라와 첼로 한 대씩 추가한 브람스 현악6중주의 풍성한 울림을 즐기다 보면 실내악의 악기 편성에 따라 얼마나 다양하고 깊이 있는 표현이 가능한지 깨닫게 된다.

 

5중주나 6중주가 이러할진대 7중주와 8중주의 독특함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실내악 문헌 가운데 7중주는 드문 편이지만, 베토벤의 유명한 7중주곡 덕분에 우리는 관악기와 현악기가 조화된 7중주의 놀라운 음향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

 

7대의 악기가 어우러진 베토벤의 7중주곡

7대의 악기가 어우러지는 베토벤의 7중주 작품20의 연주 인원은 비록 7명에 불과하지만 7명의 연주자 모두 각자 자신의 파트를 연주하고 있기 때문에 음악적으로는 꽤 복잡한 텍스추어를 갖추고 있다. 연주에 참여하는 관악기로는 클라리넷, 바순, 호른이 있고 여기에 현악기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가 더해지면서 그야말로 오케스트라의 축소판 같은 느낌을 주는 곡이다. 오케스트라에서 목관악기가 주로 독주자의 역할을 맡아 활약하듯 베토벤의 7중주에서도 클라리넷이나 호른 등의 활약이 돋보이고 현악기는 그들의 연주를 잘 받쳐주곤 하지만, 간혹 현악기와 관악기가 서로 선율을 주고받으며 서로 어우러질 때면 7대의 악기가 각자 7가지 무지갯빛 선율로 개성을 뽐내며 찬란하게 빛난다.

 

베토벤을 존경했던 슈베르트는 베토벤의 7중주를 특히 좋아했다. 1824년에 심각한 병으로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슈베르트가 매우 밝고 긍정적인 느낌의 8중주곡을 작곡할 수 있었던 것도 베토벤 7중주와 닮은 실내악곡을 쓰고 싶다는 강한 욕망 때문이었으리라. 당시 슈베르트는 루돌프 대공의 궁정과 일급 아마추어 클라리넷 주자로부터 작품 의뢰를 받고 그해 2월부터 8중주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그는 베토벤 7중주와 똑같은 편성에다 제2바이올린을 더 넣어 8중주곡으로 작곡했고, 악장 구성도 베토벤 7중주와 똑같이 6악장으로 했다.

 

작곡 당시 슈베르트가 어찌나 일에 몰두했던지 절친한 친구가 집을 방문했는데도 인사말 한 마디만 던지고는 친구가 떠날 때까지 계속 작곡에만 집중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슈베르트가 그토록 애정을 가지고 작곡한 8중주곡은 슈베르트의 작품들 중 과소평가되는 바람에 1853년이 되어서야 출판될 수 있었지만, 오늘날 이 곡은 실내악에서 가능한 다양한 음색을 실험한 획기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풍부한 음향을 자랑하는 멘델스존의 현악8중주

멘델스존의 현악8중주곡은 슈베르트의 8중주곡과 더불어 8중주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16세 소년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운 이 놀랄만한 작품은 현악8중주라는 특이한 구성이 주는 풍부한 사운드와 귀에 쏙 들어오는 주제 선율, 가볍고 묘사적인 스케르초,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작품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독특한 개성까지 갖추고 있어 오늘날 즐겨 연주되고 있다.

 

사실 현악4중주의 구성을 정확히 2배로 늘린 현악8중주라는 편성은 그리 흔하지 않지만, 이와 비슷한 편성은 이미 작곡가 루이 슈포어에 의해 이미 시도된 적이 있었다. 슈포어는 2개의 현악4중주단을 마주 보도록 배치해 마치 바로크 시대의 베니스 교회 합창단의 '2중 합창'처럼 입체적인 음향을 만들어냈는데, 이러한 음향 효과는 실내악 연주에서는 드물었다. 멘델스존은 아마도 현악4중주단을 중복해 독특한 사운드를 만들어낸 슈포어의 방식에 깊은 영향을 받아 이런 대규모 편성의 실내악을 작곡했던 것으로 보인다.

 

멘델스존의 8중주에서도 4명의 연주자들이 각각 한 팀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슈포어의 8중주곡처럼 2개의 현악4중주단이 서로 대화하듯 입체 음향을 들려주지만, 멘델스존의 작품에서는 단지 현악4중주곡을 두 개의 현악4중주단이 함께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여덟 대의 악기들 모두가 서로 다른 파트를 연주한다는 점에서 슈포어의 작품보다 더욱 다채로운 음향을 들려준다. 또 섬세하고 가벼운 음향으로부터 교향곡과 같은 웅장함에 이르기까지 다이내믹의 표현 범위가 매우 넓어서 연주 효과도 매우 뛰어나다. 그래서 멘델스존 스스로도 이 작품에 대해 "이 8중주는 모든 파트가 마치 교향곡과 같은 양식으로 연주되어야 한다. 피아노와 포르테는 정확하게 구별되어야 하며 다른 실내악 작품들에서보다 훨씬 더 강조되어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독특한 편성의 3중주곡을 작곡한 브람스

7중주와 8중주는 악기가 많이 편성되기 때문에 그 자체로 독특한 실내악곡이 될 확률이 높지만, 일반적인 3중주곡 중에서 독특한 작품이 나오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브람스의 호른3중주와 클라리넷 3중주의 가치는 더욱 돋보인다.

 

브람스가 피아노와 바이올린 그리고 호른을 위해 작곡한 3중주 작품40은 1865년 브람스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작곡되었다. 호른은 브람스가 매우 좋아했던 악기로, 그의 교향곡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실내악 작품에서도 호른3중주라는 독특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이 작품에는 슬픔과 고통을 표현하는 호른의 음색과 장송 행진의 분위기가 나타나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는 브람스의 마음이 전해진다.

 

브람스의 클라리넷 3중주 작품114 역시 특이한 편성의 3중주곡으로, 피아노와 클라리넷, 첼로를 위한 작품이다. 마이닝엔 궁정 악단의 클라리넷 주자 뮐펠트의 연주에 깊은 감명을 받은 브람스는 이 작품에서 표현력이 풍부한 클라리넷 선율과 첼로의 깊은 저음을 융합해 독특한 감흥을 표현해냈다. 때때로 클라리넷 파트를 비올라가 대신하기도 하지만, 클라리넷과 첼로의 독특한 울림이 돋보이는 원곡이 더욱 개성 있다.

 

브람스의 클라리넷 3중주는 또 한 곡의 걸작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1895년 브람스와 만나 강한 인상을 받은 25세의 젊은 쳄린스키는 브람스의 클라리넷 3중주에 큰 감명을 받고 이 작품을 모델로 그 자신이 클라리넷 3중주곡을 작곡했는데, 전반적으로 멜랑콜리한 분위기가 브람스의 작품과 매우 유사하다. 쳄린스키는 이 작품으로 작곡가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실내악은 웅장한 교향곡이나 드라마틱한 오페라에 비해 화려하지는 않지만, 섬세한 매력을 갖추고 있어 편안하게 감상하기에 좋다. 게다가 여러 악기 소리를 더욱 잘 들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늦은 밤, 조금은 적적한 기분이 든다면 실내악 명곡을 작은 소리로 틀어놓고 한가로운 명상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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