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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다락방

바흐와 헨델은 음악의 부부일까?

by ▤♪▧♬▥ 2020. 5. 14.

 

 

 

<파리넬리>나 <왕의 춤> 등 바로크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교회와 왕실이 등장하고 주인공들은 그에 걸맞은 화려한 옷을 입고 나온다. 이것이 바로 바로크 시대의 분위기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대표적인 바로크 음악가 비발디, 바흐, 헨델의 초상화를 봐도 모두 화려한 가발을 쓰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크라는 말은 '일그러진 진주'를 뜻하는 포르투갈어의 'barroco'에서 나왔다.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 예술에서도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과 미술이 복잡하게 느껴져서 일그러졌다는 의미를 붙인 것이다. 이미 우리에게는 고전 중의 고전인 바로크음악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새로운 예술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충격과 이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겠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라는데, 나는 음악을 좋아하지만 저 사람이 아버지인 줄은 몰랐네"라고 하는 학생의 말에 슬며시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나선 음악실에 올 때마다 바흐의 초상화를 보며 "아버지 안녕하셨어요?"라고 인사하는 녀석의 귀여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럼 왜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는 거창한 수식어로 부르게 됐을까? '바흐가 작곡가 중에 가장 먼저 태어나서 그런가'하는 의문도 가질 수 있겠다. 그 대답은 물론 '아니다'이다. 또 '바흐가 생전에 20명의 자녀를 두었다던데, 그래서 별명이 음악의 아버지일까'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도 물론 정답이 아니다.

 

바흐가 태어나기 전인 르네상스 시대에도 많은 교회음악 작곡가들이 있었고, 그전인 중세 시대에도 작곡가들이 있었다. 그러나 바흐가 살던 바로크 시대에는 이전보다 다양한 음악양식이 발달했다. 또 음악사 적으로도 중요한 음악가들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서양음악이 화려하게 피어난 시대였던 것이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작곡가는 정말 많지만, 그중에서도 이 시대의 중심에 섰던 인물은 역시 바흐라고 할 수 있다.

 

바흐는 바로크 시대의 많은 음악 장르들을 아주 높은 수준으로 이끌었으며, 그가 일생에 걸쳐 남긴 작품들은 후대 작곡가들에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쳤다. 바흐가 생각한 작곡 기법이나 음악적인 내용들이 매우 훌륭해서 두고두고 배울 점이 많았던 것이다. 베토벤은 이런 말도 했다. '바흐'라는 이름은 독일어로 '실개천'을 의미하지만, 그의 음악은 마치 '대양'과도 같다고. 음악사에서 바흐가 서거한 1750년을 바로크 시대의 끝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존재감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 아버지의 업적

바로크 시대의 지배계급은 엄청난 부와 권력을 누렸다. 그들은 유희를 위해 또 부를 과시하기 위해 음악이 필요했다. 예술가란 누구보다 자유로워야 할 사람일 것 같지만, 당시에는 오케스트라, 합창단, 오페라단, 작곡가 모두가 궁정이나 교회에 소속되어 활동을 했다. 바흐도 궁정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로 일하면서 많은 작품을 썼었다. 교회의 지휘자와 음악감독으로 봉사하면서 위대한 종교음악을 남겼다.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들 대다수가 그랬듯이 그 역시 궁정이나 교회에 소속되어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그는 오르간 곡과 건반악기를 위한 평균율곡 그리고 협주곡, 관현악곡, 미사곡, 교회 칸타타, 오라토리오 등 1,000여 곡의 작품을 남겼다. 그렇지만 바흐는 생전에 큰 인기와 부를 누리는 작곡가는 아니었다. 오히려 사후에 더욱 높은 평가를 받았다. 자신의 작품이 인기를 얻든 그렇지 않든 꾸준히 작곡한 그 모습 또한 언제나 묵묵히 일하시는 아버지의 모습 같다고나 할까?

 

음악의 어머니 헨델, 여자가 아니다.

음악의 아버지가 바흐라면, 음악의 어머니도 있다. 어머니 없이 아버지만으로 자식이 태어나진 못할 테니까 말이다. 우리가 음악의 어머니라 칭하는 작곡가는 바로 한델이다. 헨델 역시 바로크 시대의 위대한 작곡가다.

 

간혹 '힌델은 음악의 어머니'라고 하면 '아, 여성 음악가구나'라고 생각하는 학생도 있는데, 아무래도 초상화의 길고 화려한 곱슬머리 가발이 한몫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헨델은 엄연한 남자 작곡가다. 그런데 왜 음악의 어머니라고 할까?

 

* 아버지와 어머니의 차이

헨델도 바흐와 같은 해인 1685년에 독일의 할레에서 태어나 오르가니스트이자 작곡가로 성장했다.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라면 헨델은 어머니라 할 수 있을 만큼의 훌륭한 업적을 남겼는데, 그 역시 후대의 새로운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던 작곡가이다. 또 바흐와 같은 해,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비슷한 점도 많았다.

 

하지만 다른 점도 많기 때문에 아버지 바흐와 대조되는 어머니가 어울렸을 듯하다. 바흐는 살아생전 태어났던 곳에서 멀리 벗어난 적이 없었던 반면, 헨델은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이탈리아에서 대규모 오페라 작품을 발표한 적도 있고, 영국의 런던에서 머물며 작곡활동을 하고 오페라단을 운영하기도 했다. 또한 대외적으로 촉망받는 작곡가인 동시에 대중적인 인기까지 얻었던 작곡가라는 면이 바흐와 다른 점이다.

 

비슷한 부분도 다른 부분도 참 많은 두 사람이지만, 이들 덕분에 서양음악이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존경의 표시로 그들의 이름 앞에 이 같은 수식어를 붙인 것일지도 모른다.

 

* 영화 <파리넬리> 속의 헨델

영화 <파리넬리>에는 바로크 시대의 음악적 상황이 잘 나타나 있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헨델도 등장한다. 주인공 파리넬리는 아주 유명하고 인기 많은 카스트라토였다. 그리고 헨델은 그보다 더 유명하고 인기 많은 작곡가였다.

 

영화 속에서는 파리넬리를 사랑한 여인이 그에게 헨델의 곡을 훔쳐다 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주인공이 불렀던 '울게 하소서'는 바로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에 나오는 아리아였다. 바흐는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았던 데 반해 헨델은 오페라와 오라토리오 등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음악도 많이 작곡했다.

 

바로크 음악, 이것말 알고 가자

바로크 시대의 음악을 해설하는 책에는 반드시 나오는 몇 가지 이야기가 있다. '대위법이 발달했다' '바로크는 통주저음의 시대이다' '장 단조 체계가 완성되었다' 등등의 내용인데,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낯설기만 한 단어들이다.

 

* 대위법

'바흐는 대위법을 절정으로 끌어올렸다' '바로크 시대는 대위법적 양식이 매우 발달한 시대이다' 등은 조금 어려운 말 같지만 바로크음악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하기 때문에 자주 나오는 것이다.

 

화음이 '도미솔'하고 동시에 울리는 것과 달리, 대위법은 두 개 이상의 서로 다른 멜로디가 독자적으로 진행하며 서로 조화를 이루는 작곡기법이다. 바로크음악의 가장 큰 특징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 통주저음

'바소 콘티누오'라는 단어는 바로크 시대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작품에도 많이 등장하는데, 악보의 가장 낮은 성부인 베이스에만 간단한 선율을 넣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즉흥적인 화음 반주로 채우는 것이다. 베이스 파트에는 첼로나 바순 같은 저음악기들이 첨가되기도 한다.

 

낮은음이 지속적으로, 통째로 이어지기 때문에 '통주저음' 또는 '계속저음'이라고도 한다. 또한 베이스 선율 위에 나와 있는 숫자에 따라 연주되기 때문에 '숫자저음'이라고도 한다.

 

 

* 장단조 체계

장단조 체계는 조금 감이 잡힐까? 우리가 알고 있는 장조와 단조는 바로크 시대에 확립된 것이다. 이전에는 교회선법에 따라 음악을 만들었지만, 장단조 체계가 완성되면서 더욱 풍부한 화성 표현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조성의 원리는 서양음악의 중심적 요소로 자리 잡았다. 바흐는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에서 모든 장조와 단조를 사용한 작품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바로크 시대는 이 밖에도 오페라, 오라토리오, 칸타타 등 수많은 장르와 형식이 탄생했다. 악기 제작 기술 또한 크게 발달하여 서양음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오늘날의 서양음악은 바로크 시대에 활동한 많은 음악가들의 공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음악의 아버지 어머니를 품었던 시대, 바로크 음악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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