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클래식 다락방

프랑스가 외면한 불굴의 파리지앵, 베를리오즈

by ▤♪▧♬▥ 2020. 5. 14.

 

 

 

이탈리아 작곡가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1723)는 오늘날 가장 유명한 클래식 음악이자, 봄-여름-가을-겨울의 주제를 음악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표제음악program music이다. <사계>를 듣다 보면 싱그러운 봄, 천둥이 치는 여름, 풍요로운 가을, 눈 덮인 겨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표제음악이 진화하여, 단순한 회화성을 넘어 좀 더 극적인 드라마와 입체적인 효과를 표현한 '스토리'음악이 된다. 이런 음악의 대표작이 프랑스 작곡가 루이 엑토르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Symphonie Fantastique op.14>이다.

 

<환상교향곡>에 출몰하는 '그녀' 멜로디

1830년 베를리오즈가 <환상 교향곡>을 작곡한 것은 한 여성에 대한 뜨거운 짝사랑 때문이었다.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즐겨 보던 스물 일곱 청년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햄릿>의 오필리아 역을 맡은 당대 최고의 여배우 해리엇 스미드슨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나 열 산 연상의 여배우는 이제 막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의학도 출신 풋내기 작곡가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 그 절망과 분노의 결과물이 <환상 교향곡>이다. '어느 예술가의 생애'라는 부제가 붙은 이 곡은 베를리오즈의 자전적인 연애사인 것이다.

 

교향곡은 일반적으로 4악장 구조인데, 이 교향곡은 5악장으로 되어 있고 각 악장마다 스토리가 진행된다. 그리고 이 스토리 전달을 내레이터나 성악가가 아닌 오케스트라가 담당하는 순수 기악곡이다. 오케스트라가 어떻게 이야기를 전달한단 말인가? 여기서 베를리오즈의 독창적인 작곡 기법인 '고정상념'이 등장한다.

 

고정상념은 등장인물처럼 극 중에서 어떤 특정한 관념을 나타내는 일정한 선율이다. <환상 교향곡>에서는 예술가가 짝사랑하는 연인을 상징하는 주제 선율이 계속 등장한다. 물론 각 악장마다 리듬이나 악기 등은 변화한다. 5악장 전체를 통해 이 고정상념은 여러 가지 변화된 형태로 등장하며 연인의 내적 · 외적 상황을 묘사한다. 베를리오즈 본인의 설명대로 "연인이 예술가에게 선율이 되고, 그 것이 동시에 고정상념이 되어 도처에서 들리게 되는" 것이다.

 

<환상 교향곡>의 간략한 줄거리는 이러하다. 한 여인을 미친 듯이 짝사랑하는 젊은 예술가가 연인에게 거절당할까 봐 근심하다가 정말로 퇴짜를 맞는다. 예술가는 좌절하여 아편을 복용하는데, 꿈속에서 단두대로 끌려간다. 그런데 꿈에서 깨어나 보니 사랑하던 여인이 마녀가 되어 마녀들의 잔치에 나타난다.

 

1악장 '꿈과 열정'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기 전 예술가의 우울한 심정
2악장 '무도회' 무도회장에 나타난 아름다운 여인(고정상념)의 모습에 사람들의 눈길에 쏠린다.
3악장 '전원 풍경'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 시골로 간 예술가.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을 나타내는 목가적인 2중주.
4악장 '단두대의 행진' 급기야 여인을 죽이고 사형선고를 받아 단두대에 끌려가는 예술가. 단두대로 가는 길은 어둠과 눈부신 빛이 공존한다. 마지막 순간에 떠 오르는 여인의 모습(고정상념)
5악장 '악마의 축제날 밤의 꿈 정신을 차린 예술가는 장례식에 모인 마녀들을 발견한다. 이때 기괴한 무도풍의 선율로 등장하는 여인. 여인을 본 마녀들이 벌이는 난잡한 연회에 이어 예술가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린다.

 

고정상념 등 '스토리'가 제대로 살아나려면 이를 전달하는 악기들의 '개성'이 잘 발휘되어야 한다. 베를리오즈는 오케스트라 악기들에 개성을 부여하고자 혁신적인 시도를 한다. 바로 '성부 분할'이다. 각 악기군을 세부적으로 분할해 여러 겹의 음향층을 만드는 것이다. 특히 마녀들의 축제를 묘사한 5악장 도입부를 들어보면,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이 각각 세 파트로, 비올라 역시 두 파트로 나뉘어 연주된다. 통상 5성부로 나뉘는 현악기군이 무려 10성부로 분할 연주되는 것이다. 그 결과, 예술가의 환상이 만들어 낸 이상야릇한 장면이 실감 나게 재현된다.

 

그러나 선율과 악기 소리로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베를리오즈는 연주자들에게도 고난의 주법을 요구했다. 현악 주자들은 잦은 트레몰로tremolo(한 음을 재빨리 떨리듯 반복하는 주법)와 아르페지오arpeggio(화음을 이루는 음을 연속해서 재빨리 연주하는 주법)뿐 아니라, 두 줄을 한꺼번에 긋는 이중음이나 현을 손으로 퉁기는 피치카토pizzicato, 약음기(악기에 붙여 음을 약하게 하거나 부드럽게 하는 장치)를 끼고 연주하는 콘소르디노con sordino 등의 다양한 주법을 능숙하게 구사해야만 했다. 5악장 해골들이 춤을 추는 장면에서는 뼈가 부딪히는 소리를 내고자 다른 작품에서는 거의 보기 어려운 콜레뇨col legno(활대로 현을 치는 주법)까지 등장한다.

 

음악은 비극적이지만, 현실 속 '예술가"는 여인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한다. <환상 교향곡>을 완성하고 3년 뒤인 1833년, 베를리오즈는 집안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해리엇과 결혼한다. 그러나 결혼 직후 잘 나가던 해리엇이 사고로 무대를 떠나면서 '비정규직 음악가' 베를리오즈의 고난에 찬 음악 역정이 이어진다. 

 

영화음악의 시작은 표제음악에서

베를리오즈는 관현악을 위한 다악장의 교향곡에서 이야기를 끌어 나갈 줄 아는 작곡가였을 뿐 아니라, 관현악곡에 어떤 제목을 붙여야 할지를 아는 작곡가이기도 했다.

 

결혼 무렵, 파격적인 작품으로 고국 프랑스에서 냉대받던 베를리오즈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이는 이탈리아의 파가니니였다. 당시 파가니니는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였다. 파가니니는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이야말로 자신의 <베네치아 사육제>를 뛰어넘는 최고의 걸작이라 평가하며, 신출내기 작곡가 베를리오즈에게 비올라 연주곡을 의뢰했다. 당시 파가니니는 최고의 명기로 꼽히는 스트라디바리우스 비올라를 손에 넣고 이를 시험해 보고자 했다.

 

1834년 베를리오즈는 자신의 우상인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의 시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에 곡을 붙여 <이탈리아의 해럴드Harold en Italie op. 16>를 완성했다. 베를리오즈의 이 두 번째 교향곡은, 비올라 파트가 적다는 파가니니의 불만을 받아들여 비올라 독주를 부각시키면서 지금과 같은 4악장의 '비올라협주곡'이 되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파가니니는 작곡료로 당시로선 파격적인 거금 2만 프랑을 지불했다.

 

그러나 이후 몇 년간 베를리오즈는 다시 인기 없고 가난한 작곡가 생활을 계속해야 했다. 무대 사고로 몸이 불편한 아내 해리엇과도 점점 사이가 벌어졌다. 베를리오즈는 나중에 드뷔시가 그랬듯이 음악비평을 하며 생계를 이어 갔다. 그러나 음악적으로는 앞서 언급한 <이탈리아의 해럴드>를 비롯해, 알제리전쟁에서 전사한 프랑스 군인들을 추도하는 대작 <레퀴엠 Requiem op. 5, Grande Messe des morts>(1837), 가극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 op. 23>(1838), 교향곡 <로미오와 줄리엣Romeo et Jiliette op. 17>(1839) 등 낭만주의 걸작을 계속 발표했다.

 

가극 <벤베누토 첼리니>의 1838년 초연은 대실패였지만, 베를리오즈는 굴하지 않고 여기서 관현악곡 몇 개를 뽑아 약간 손질한 후 콘서트용 서곡으로 다시 발표했다. 그때도 제목은 '벤베누터 첼리니'였다. 벤베누토 첼리니는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이름을 날린 이탈리아의 조각가 겸 화가, 음악가, 군인으로 모험가이자 호색가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베를리오즈의 두 번째 시도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뜨거웠던 사랑도 점점 식어 결혼 10년 만인 1840년, 베를리오즈는 해리엇과 별거하고 여가수 마리아 레치오와 같이 살기 시작한다. 이렇듯 사랑도, 고국에서의 음악 생활도 빛을 잃어 갈 즈음, 독일에서 로베르트 슈만이 그를 옹호하는 글을 쓴 것이 계기가 되어 라이프치히, 베를린, 만하임, 빈을 거쳐 영국 런던과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그를 초청했다.

 

이즈음 베를리오즈는 <벤베누토 챌린지>를 다시 꺼내 들었다. 아무래도 아까운 작품이었던 모양이다. 마침 이탈리아 로마를 방문했을 때 목격한 카니발(사육제)로 작품을 만들려던 참이었다. 그는 <벤베누토 첼리니>의 제 2막 서곡을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제목만 <로마의 사육제 서곡>으로 바꾸어 다시 한번 무대에 올렸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베를리오즈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역시 청중은 음악을 들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 제목을 들으러 오는 거로군!"

 

베를리오즈는 불굴의 음악정신을 가진 낭만의 작곡가였으나, 죽을 때까지 고군 프랑스에서는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고정상념'은 이후 리스트의 '교향시symphonic poem>, 바그너의 '라이트 모티프leitmotif로 확장 발전되었다.

 

반복적으로 나오는 라이트모티프로 확장 발전한다. 특히 인물이나 상황에서 특정 선율이나 화음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라이트모티프는 현대 영화음악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청중의 자유로운 감상은 아랑곳없이, 작곡가의 '표제'를 청중에게 자유로운 감상은 아랑곳이 없이, 작곡가의 '표제'를 청중에게 굳힘 없이 제시한 베를리오즈는 그 진정한 뿌리가 아닐까.

 

 

 

 

 

댓글